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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창조적인것들/디자인아이콘

1924 Merz



“전쟁 중에 모든 것은 끔찍한 아수라장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쓸모가 없었고, 쓸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 모든 것은 무너져 버렸고 새로운 것들이 그 파편들 속에서 만들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메르츠(Merz)>다. 그것은 내 안에 일어난, 당연히 그래야만 했던 혁명과도 같았다.” <메르츠>의 창간자이자 디자이너인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의 말이다.

 

<메르츠>는 1923년부터 1932년까지 독일 하노버에서 24회에 걸쳐 발행되었던 잡지다. 다다이스트 쿠르트 슈비터스의 대표작으로 20세기 초반 동시대의 <바우하우스(Bauhaus)>, <캄포 그라피코(Campo Crafico)>, <베시치> 등과 함께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으로서의 잡지를 새롭게 표방했다.

 

1920~30년대 유럽에서는 미래주의, 다다이즘, 큐비즘, 러시아 구성주의, 바우하우스 등 혁신적인 예술 운동들이 퍼져 나가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엘 리시츠키(El Lissitzky),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 그리고 테오 판 두스부르흐(테오 반 되스부르크, Theo van Doesburg) 등을 중심으로 잡지는 새로운 예술 운동의 한 형식으로서 실험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잡지의 내용을 넘어서 형식에 대한 실험들을 감행해 나갔다. 그 결과 잡지들은 모더니즘의 기운을 업고 더 정교하고, 체계적인 편집과 지면 레이아웃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쿠르트 슈비터스의 <메르츠>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다이즘에서 러시아 구성주의와 신 타이포그래피로의 이행을 볼 수 있는 잡지였다. 다다이즘의 특성에 따라 초기에는 다소 직관적이고 혼란스러운 디자인을 선보였던 슈비터스는 점차 러시아 구성주의와 신 타이포그래피 스타일로 잡지를 디자인해 나갔다. 이러한 사례들은 1924년 11호 그리고 슈비터스와 엘 리시츠키가 함께 만든 8/9호에서 볼 수 있으며, 이 잡지들에선 산세리프체, 굵은 괘선, 강한 대비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메르츠>는 한스 아르프(Hans Arp), 얀 치홀트(Jan Tschihold) 등 슈비터스 주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장이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슈비터스 개인의 포트폴리오이자 발언의 장으로서의 역할이 더 컸다. 그는 주변에서 발견하고 모은 오브제들을 콜라주로 만들면서 당시 사회에 대한 풍자적 발언을 했다. 그래서 <메르츠>는 리처드 홀리스가 평했듯이 쿠르트 슈비터스 ‘혼자만의 운동(one-man movement)’이기도 했다.

 

 

 

 전가경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인 회사 AGI 소사이어티에서 근무한 뒤 2007년부터 디자인 관련 글쓰기와 강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세계의 아트디렉터 1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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