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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창조적인것들/디자인아이콘

1930 Fortune



<포춘(Fortune)>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매년 발표되는 ‘미국 상위 500대 기업’, ‘세계 상위 500대 기업’ 등의 기업 순위일 것이다. 1930년에 월간지로 시작한 <포춘>은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경쟁지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 <포브스(Forbes)>와의 경합 속에서도 우위를 선점하며, 최장수 종합 경제지로서 그 이름값을 하고 있다.

 

<포춘>은 <타임(Time)>의 창간자이기도 한 헨리 루스(Henry Luce)에 의해 창간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제를 다루는 이 잡지는 미국 대공항이 시작되었을 때 첫선을 보였으며, 사람들은 잡지의 미래를 암울하게만 점쳤다. 하지만 루스의 뛰어난 식견으로 인해 잡지는 오늘날 보기 드문 ‘걸작’ 잡지 중 하나로 남게 된다. <포춘>은 경제지였으나, 루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잡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 그는 토마스 클레란드(Thomas M. Cleland)를 영입하게 되고, 동시대 대표적인 잡지 <보그>, <배니티 페어> 그리고 <하퍼스 바자> 등과 함께 미국 초창기 잡지 디자인에 큰 획을 긋게 된다. 이 ‘아름다운 경제 잡지’는 이후에도 저명한 아트디렉터들인 빌 부르틴(Will Burtin), 레오 리오니(Leo Lionni) 등이 만들어가면서, 앨런 헐버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 잡지의 이정표”로 자리매김한다.

 

클레란드는 매우 절제되고 묵직한 디자인을 <포춘>에 도입했다. 이미 크기와 무게만으로도 이 잡지는 여타 다른 잡지들 사이에서 돋보였다. 36x28.5cm에 달하는 판형, 160~22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 그래서 1kg이 넘는 무게. 당시 잡지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습이었다. 게다가 배달할 때는 두꺼운 하드보드로 포장되었다. 이러한 무게감 있는 외형은 내지로도 이어졌다. 클레란드는 일리노어 트레이시(Elanor Tracey)를 데려오면서 내용과 형식이 어울리는 디자인에 좀 더 박차를 가하게 된다. 특히, 표지 그림에 액자 테두리를 입혀 일종의 ‘트롱프뢰유(trompe l'oeil)’ 효과를 내는가 하면, 마거릿 버크화이트(마가렛 버크-화이트, Margaret Bourke-White)와 벤 샨(Ben Shahn)과 같은 사진가들과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적극 섭외하면서 당시 미국 경제와 과학계의 흐름에 관한 시각적 보도를 시도하게 된다. 이 밖에도 효과적인 정보 전달을 위해 뛰어난 정보 그래픽을 고안해냈으며, 가독성을 중시한 정갈한 타이포그래피, 견고한 단 운영 등으로 1930년대 미국적 타이포그래피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하지만, 어느 한 저널리스트의 평대로 잡지는 1970년대 이후 “외형상의 타락”이 일어나게 되고, 급기야 오늘날에는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는 잡지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전가경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인 회사 AGI 소사이어티에서 근무한 뒤 2007년부터 디자인 관련 글쓰기와 강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세계의 아트디렉터 1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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