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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창조적인것들/디자인아이콘

1994 Colors



잡지 <컬러스(Colors)>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여전히 만날 수 있는 <컬러스>가 있고, 1990년에서 1995년이라는 5년여의 기간 동안 만들어졌던 <컬러스>가 있다. 이 ‘두 가지’ <컬러스>는 분명 동일한 잡지지만, 한 측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꼴의 잡지다. 그리고 그 다름의 이유는 <컬러스>의 전 아트디렉터이자 편집장이었던 티보 칼맨(Tibor Kalman)의 존재 유무에 있다.

 

1995년 이후에 발간된 수많은 <컬러스>보다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티보 칼맨의 <컬러스>. 베네통사의 기업 잡지로 시작했던 <컬러스>는 오늘날 유행 같은 ‘기업 잡지’와는 다르게 기업 경영과는 독립된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그 안에서 기업 ‘베네통’ 홍보와 같은 제스처는 찾아볼 수 없었다.

 

1980년대 미국 디자인계의 ‘나쁜 아이’로 곧잘 언급되던 티보 칼맨과 그를 전적으로 후원하고 이해했던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가 잡지 전반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던 <컬러스>는 이미 그 첫 호부터 도발적인 이슈와 과감한 디자인 등으로 화제가 되었다. 에이즈, 성, 폭력, 기근 등이 그 주제였는데 다소 무거운 내용에 비해 잡지가 타깃으로 했던 것은 놀랍게도 지구촌의 10~20대 청소년들이었다. 칼맨은 전문적인 이러한 내용들을 사진이라는 ‘세계 공통어’를 통해 쉽게 전달하고자 했으며, 특히 정보 그래픽적인 요소를 십분 활용하여 지구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사실은 보는 잡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는 잡지의 표어였던 “(당신이 누구든지) 당신의 문화만큼이나 우리의 문화도 중요하다(우리가 누구든지)”에도 충실했다.

 

티보 칼맨이 만든 <컬러스>의 절정은 그의 마지막 호인 13호였다. 디자인 평론가 릭 포이너(Rick Poynor)가 한 편의 인류학적 오디세이라고까지 추켜세운 13호는 오로지 사진으로만 구성된 시각적 내러티브이다. 병치, 반복, 줌인과 줌업, 크로핑 등 다양한 사진 디자인 기술을 녹여낸 이 한편의 인류학적 사진 보고서는 전쟁, 식탐, 성, 폭력 등 인류의 안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장면들을 구석구석 비춘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는 인간의 세포 사진으로 끝난다. 지구촌의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극단 사이를 오가는 격정적인 인간 드라마는 하나의 작은 세포 이미지로 마무리된다는 칼맨과 <컬러스>의 메시지 앞에서 독자는 잠시 숙연해진다. 우리 모두는 세포 덩어리로 이루어진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인물들이라는 사실 앞에서 말이다.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는 동안 디자이너로서의 사회적 발언과 그 태도를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던 칼맨은 1999년 림프암으로 세상을 뜬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놓은 <컬러스>는 오늘도 여전히 지구촌 이곳저곳을 비추며, 사진을 언어로 세상의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전가경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인 회사 AGI 소사이어티에서 근무한 뒤 2007년부터 디자인 관련 글쓰기와 강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세계의 아트디렉터 1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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