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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도레 [수수께끼] 1871






















귀스타브 도레 [수수께끼] 1871

캔버스에 유채 ㅣ 130×195.5cm ㅣ 오르세 미술관

 

© The Bridgeman Art Library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 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1870년에 발발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그리고 1871년의 파리 코뮌 이후 프랑스에는 새로운 공화국이 굳건히 들어서게 되었고, 사회 질서가 새롭게 잡히면서 비로소 예술의 활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파리에서는 매년 열리던 <살롱전>이 다시 개최되기 시작했다. 1872년부터는 전쟁 이전에 <살롱전>이 정기적으로 열렸던 장소인 샹젤리제 궁이 전시 개최일인 5월 1일에 문을 열게 되었다. 그 해에 심사위원들은 1870년의 <살롱전> 때 선정했던 5434점의 작품에 비해 양적으로 확실히 적은 2067점의 작품만을 선정했으며, 이렇게 선정된 작품들은 개막식에 참석한 소수의 관람객들만이 구입할 수 있는 화보집에 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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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보집의 판매가 중단된 후, 몇몇 작품이 삭제된 두 번째 화보집이 출간되었는데, 앞선 화보집과 비교해 보면, 두 번째 화보집에서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참상을 다루었던 작품들이 모두 삭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결정의 배후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에 대한 복수심을 너무 성급하거나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의 외교적인 의도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에밀 졸라(1840-1902)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은 격렬한 반대의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졸라는 1872년 5월 12일, <라 클로슈>라는 잡지에 발표한 [파리에서의 편지들]이라는 기고에서 “정부는 프러시아를 향한 복수의 함성을 잠재우고자 했지만, 그 때문에 국민들에게 고통의 신음만을 남겨 주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패배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귀스타브 도레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전하면서, 자신의 고향인 알자스가 독일의 소유로 넘어감에 따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짙은 작품인 [알자스]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1872년의 <살롱전>에 출품되었다. 1879년 도레에 대한 책을 쓴 르네 들로름(1848-1890)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여러분은 이 알자스의 소녀를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삼색기를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이 소녀를 말입니다. 소녀의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는 훗날 복수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될 전쟁 고아를 사랑스럽게 돌보고 있습니다.”

 

퓌비 드 사반느 [희망] 1872년
캔버스에 유채, 129.5×102.5cm, 월터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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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도레 [크리스마스의 밤] 19세기경
물감, 검은 잉크, 75cm×51cm, 루브르 박물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NM)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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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던 작품 [알자스]는 다행히 우의적인 표현을 한 덕분에 첫 번째 화보집에서 제외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실상 당시 첫 화보집에서 제외된 작품들은 알렉상드르 프로테(1826-1890)의 [죄수들], [메츠의 주변 지역, 1870년 11월 1일]처럼 전쟁을 사실 그대로 그려낸 작품들이 대다수였으며, 반면에 피에르 퓌비 드 샤반(1824-1898)의 [희망](볼티모어, 월터스 아트 갤러리 소장)이나 앙리에트 브라운(1829-1901)의 [알자스, 1870]과 같은 작품들은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별탈 없이 <살롱전>에 전시되었고 화보집으로도 출간되었다.

 

도레는 자신이 겪었던 정신적인 고통을 [알자스] 한 작품에만 국한시키지 않았고, 1870년부터 1871년 사이에 나타난 다른 사회적인 동요를 여러 작품 속에 담았다. 그 중 몇몇 작품들은 그가 죽은 지 25년이 지난 후에도 역사 관련 서적의 삽화로 사용될 만큼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 가브리엘 하노토(1853-1944)의 [귀스타브 도레의 데생으로 보는 1871년의 파리, 베르사이유](파리, 플롱 누리 출판사, 1907)의 출간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작품 속 여인으로 우의화된 국가 프랑스

1870년대 초반에 그려진 도레의 여러 작품들이 전쟁의 참상을 그려냈다면, 같은 시기에 그려진 [라 마르세이예즈]나 [출정의 노래], 그리고 [수수께끼] 등의 작품에서는 그리자유 기법으로 사실주의적 표현과 우의적 표현을 혼합한 거대한 구성을 시도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작품 [수수께끼]는 도레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고안된 구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작품 속의 여러 주제에 따라 다양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원근법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작품의 전경에는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과 시민의 시체들이 언덕에 쓰러져 있으며, 저 멀리 원경에는 불타고 있는 도시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전경과 원경 사이, 즉 작품의 오른쪽에는 우의적으로 표현된 두 형상이 마주보고 있다. ‘프랑스’를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 월계관을 쓴 채 베일로 얼굴을 가진 여성과 그녀를 향해 앉아 있는 스핑크스는 각각 오른손과 오른발을 서로의 머리 위에 올린 채, 서로를 위로하는 듯한 몸짓을 취하고 있는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비극적인 분위기와 대조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작품 속의 모든 풍경 요소들은 고요하다. 단지 이 두 형상의 시선만이 서로의 존재를 연결시키고 있다. 작품 속 여인으로 우의화된 ‘프랑스’는 마치 전설 속의 동물인 스핑크스의 눈에서 전쟁의 사상자, 그리고 폐허를 넘어선 미래를 읽어내기를 갈구하는 듯 하다.

 

관련링크 : 통합검색 결과 더 보기    귀스타브 도레 미술검색 더 보기

 

 

 

 Dominique Lobstein / 오르세미술관 학예실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Wikipedia, Yorck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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