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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리뷰/영화리뷰

인셉션 Inception (2010)




영화 '인셉션'을 거론하기 전에 의식과 꿈에 대한 것부터 얘기해보자. 뇌에는 의식과 무의식의 두 개의 방이 있다. 의식이란 방은 늘 들락거릴 수 있지만 무의식은 문이 잠겨 있다. 의식의 방에는 기억(생각)이 입주해 있다. 안에 누가 있고, 뭘 하는지를 알 수 있으니 명료한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의식이란 방이다. 방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또 뭐가 있는지를 모른다. 말하자면 숙박명부가 없는 셈인데 유일하게 드러나는 것이 꿈을 통해서다. 인간의 뇌는 이 두 개의 방으로 이뤄진 복잡다단한 호텔이다.

영국 출신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이 호텔을 무대로 의식과 무의식, 기억과 꿈을 넘나들며 벌이는 놀라운 스릴러 영화다. 신선하다 못해 경악할 수준의 시나리오와 촘촘한 연출, 놀라운 화면효과 등이 액션의 재미와 함께 지적 유희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기억의 파편을 그린 문제작 '메멘토'(2001년)를 시작으로 '인썸니아'(2002년), '배트맨 비긴즈'(2005년), '다크 나이트'(2008년)를 만들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재능 있는 연출자로 손꼽히는 감독이다. '다크 나이트'만 하더라도 단순한 선악의 경계를 넘어 인간 본성을 탐구하면서 내면 깊숙이 파고든 오락 영화로 다소 고답적으로 변질되던 '배트맨' 시리즈를 단숨에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21일 개봉한 '인셉션'은 타인의 생각을 훔친다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액션 블록버스터다.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를 통해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가까운 미래. 코브(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타인의 생각을 추출할 뿐 아니라, 심을 수도 있는 이 분야 최고의 기술자다. 사이토(와타나베 켄)로부터 거대 기업 후계자 피셔(킬리언 머피)의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 기업 합병을 막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사이토가 내건 엄청난 조건에 구미가 당긴 코브는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을 규합해 작전에 돌입한다. 작전명은 '인셉션'. 그러나 피셔는 미리 꿈속에 경호원을 배치해두고 코브 일당은 예상치 않은 위험에 직면한다.

'인셉션'은 크리스토퍼 놀랄 감독이 16살 때 처음 구상하고, 지난 10년간 고심을 거듭한 끝에 완성한 역작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선악의 개념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대결로 이야기를 꾸며낸다. 표적을 잠재워 그의 꿈속에 침투하고, 만약 표적이 눈치 채면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대항적과 전투를 벌이고, 불리하다 싶으면 다시 더 깊은 꿈속으로 피신하고 다시 추격전을 벌이는 식이다.

꿈속에서의 뇌 활동은 평소의 20배가 되고, 꿈속의 꿈에서는 배가 된다. 이는 시간의 흐름으로 적용되는데 1단계에서의 10초는 2단계에서 3분이 되고, 3단계에서는 60분이 된다.

꿈 속 세계에 있더라도 모든 것이 현실과 똑같다. 꿈속에서 죽게 되면 그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진정제의 약효가 지나치게 강력할 경우 꿈의 가장 밑바닥인 '림보'에 빠져 인사불성이 된다.

'인셉션'은 시간과 공간 개념이 깨어진 세계에서 펼쳐지다 보니 액션이 화려하고, 강력하다. 무중력 상태에서 벌이는 호텔 복도 격투 장면, 빗속 도로의 추격 장면 등이 꿈속과 꿈 밖을 넘나들며 관객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장자의 '호접몽'과 같은 철학적 토대를 덧대 영화를 떠받친다. 기가 막힌 것은 남성적 힘에 의존하던 이 스토리에 아내를 잃은 주인공의 섬세한 감성적 기억이라는 면사포를 씌워 스토리를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작품성이 뛰어난 블록버스터로 기억되게 한다.

정교한 스토리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비롯한 출연진들의 연기, 화면의 압축과 확장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연출의 리듬감 등이 일품인 스릴러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초반이 느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타인의 무의식에 침투하는 설정에 대한 배경 설명 때문이다. 이 고개만 넘어가면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러닝타임 147분이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듯 긴박감 넘치게 즐길 수 있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를 경험했기에 꿈과 현실에 대한 혼동과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 등이 쉽게 이해될 수도 있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여차하면 현실인지 꿈인지, 꿈이라면 몇 번째 꿈인지 헛갈리기 쉽다.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함께 관람한 지인은 “'매트릭스' 이후 이렇게 짜릿한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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