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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리뷰/영화리뷰

레터스 투 줄리엣 (2010)




혼자 즐기는 로맨틱 멜로물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어김없이 나는 혼자 당당히 표를 구입해 싱글석에 앉았다. 어짜피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기때문에..  이런 저런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영화 시작.

상영 시간은 1시간 45분. 이제 그 시간동안 내가 본 '레터스 투 줄리엣' 이라는 영화에대한  평을 하고자 한다.

 

 

To start.

Please focus

 

 

달콤함이 지나치면 제 맛이 안 난다. ‘레터스 투 줄리엣’은 보는 사람을 충분히 달콤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크림으로 듬뿍 발린 영화다. 취향에 따라서는 이런 달콤함을 즐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쌉쌀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셔야만 입맛이 개운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잔혹한 사랑이야기다.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다.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는 복수와 응징, 죽음이 어둡게 깔려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고통 후에 남은 숭고함만 간직하고, 숭고함이 만든 로맨스만 기억한다.

‘레터스 투 줄리엣’은 너무도 간단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방식을 변주한다. 발코니 위 줄리엣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로미오는 이해불가다. 찰리(크리스토퍼 이건) 식으로 말하면 “발코니 앞에서 왜 속삭여? 당장 줄리엣 데리고 도망가야지!”

뉴욕에서 온 작가지망생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줄리엣 하우스 담벼락에서 나온 오래된 편지 한 통은, 운명의 지침을 돌리는 중대한 발견이다. 사랑하는 남자 로렌조를 두고 떠나는 애절한 클레어의 편지. 편지는 기적처럼 사랑을 재현한다. 소피가 줄리엣을 대신해서 쓴 때늦은 답신은 오래전 사랑을 잊지 못한 백발의 클레어를 50년 전 옛사랑의 공간 베로나로 향하게 한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로맨틱한 클레어의 사랑찾기에 소피는 결국 동행한다.

노년의 옛사랑 찾기 여정이라는 자칫 시시한 에피소드에 그칠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클레어의 손자 찰리와 소피의 젊은 로맨스다.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이 싹튼다. 이들의 사랑은 연애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함께 여행 온 약혼자가 일중독인 덕에 소피는 자유로운 몸이 된다. 찰리와 소피는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삐걱거림은 낯선 사람들의 로맨스에서는 길한 징조다. 유년의 상처를 간직한 두 사람. 그 공유지점도 그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필요조건이다.

결국 클레어의 사랑찾기는 찰리와 소피의 사랑만들기 여정이 된다. 클레어와 로렌조의 황혼로맨스는 찰리와 소피의 젊은 로맨스를 영글게 하는 전조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엇갈린 운명에 어쩔 수 없었던 그들에게 클레어의 경험은 충실한 지침서가 된다. “사랑을 얘기할 때 늦었다는 말은 결코 있을 수 없단다”, “나처럼, 소피 찾으러 50년이나 기다려서 남의 집 대문이나 두드릴 테냐.” 

이렇듯 ‘레터스 투 줄리엣’은 오래전 사랑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 새로운 사랑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환상을 자극한다. 아름다운 베로나와 시에나의 풍경, 주름 가득한 얼굴에도 사랑의 묘약에 취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클레어와 로렌조, 아이스크림을 서로의 얼굴에 바르고 밤하늘 초롱한 별빛이 내리는 잔디밭에 누워 달콤한 키스를 나누는 찰리와 소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이들의 로맨스에 뭇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막연한 동경이 담뿍 담겨 있다.

그럼에도 ‘레터스 투 줄리엣’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달콤해 제 맛을 잃은 커피와 같다. 모든 것이 예견되어 특별할 것이 없고, 우연성과 상투성으로 이야기는 고갈된다. 줄리엣 하우스 앞에서 오늘도 눈물겨운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고난이 사라진 줄리엣의 답신은 사랑의 낭만성을 당위적으로 웅변할 뿐이다. 그리하여 영화 같은 사랑은 우리와 소격된다. 

허나 어쩌겠는가. 사랑이야기, 그것도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달콤하라고 만든 영화가, 도무지 고뇌 따윈 찾아보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 일일지도 모른다.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이런 영화를 통해 잠시 삶의 휴지를 갖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레터스 투 줄리엣’은 정말 영화의 본질에 가까운 영화다. 너저분한 우리들의 풍경에서 벗어나 저 아름다운 베로나로 여행을 떠나는 달콤한 환상에 몰입하게 만드는…. 다만 그것이 105분간만 유효한 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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