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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리뷰/영화리뷰

시크릿 (Secret, 2009)




일 년 전 자신이 운전하는 차가 사고를 당해 동승한 딸이 죽은 아픔을 겪은 형사 김성열(차승원)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아내 지연(송윤아)의 물건을 발견한다. 피해자는 잔인하기로 유명한 깡패 두목 재칼(류승용)의 동생. 직접 범인을 잡겠다며 나서는 재칼과 자신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벼르고 있는 최형사(박원상)를 피해 성열은 증거를 조작하는 등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다. 한편, 사건 당일 건물에 한 여성이 들어가는 것을 본 경호(오정세)와 유력한 용의자 석준(김인권) 등이 나타나면서 사건의 진상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계획대로라면 윤재구 감독의 연출 데뷔작은 <세븐 데이즈>였을 것이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무튼 첫 연출에 도전했던 <세븐 데이즈>를 놓친 후, 다른 각본으로 다시 도전한 <시크릿>은 여러모로 <세븐 데이즈>와 닮아 보인다. 그러니깐 두 작품 모두 각본의 영향력이 진하게 남아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두 작품의 동일성은 무엇보다 비현실성에 있다. 이것이 어느 의미에서는 스타일리시하다거나 세련됐다는 식의 윤색이 가해질 지점이기는 하겠지만, 무국적이고 비현실적인 허구의 세계는 정교한 각본과 연출의 뒷받침이 없다면 자칫 가장 공격받기 쉬운 약한 지점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크릿>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좀 더 가까워보인다.

 

김성열의 복장이나 헤어스타일은 한국에 존재하는 경찰서의 강력계 형사가 아니라, 마치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하고, 대낮에 당당히 경찰서를 출입해 형사를 협박하는 깡패 두목의 모습도 현실 세계의 반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반적인 미장센의 분위기도 그렇다. 피해자가 죽은 사무실의 모습이라든가 김성열 자택의 내부도 고급 와인바를 옮겨 놓은 듯하고, 심지어 사소한 문제긴 하지만 김성열과 최형사가 경찰대학 출신이라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세븐 데이즈>와 마찬가지로 <시크릿>에서도 비현실적 캐릭터라든가 비현실적 환경에 각본가라든가 연출자가 특별히 신경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깐 재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현실을 변용, 변화시켜도 상관없다는 태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나름 성과(?)가 있었다고 인정해줄만하다. 적당히 빠른 스피드, 계속적으로 돌출되는 새로운 수수께끼와 미드를 연상시키는 듯한 화면 때깔은 분명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주며, 충분히 의심 갈 만한 인물들의 포진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데 적절하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해 이 영화의 장점은 딱 거기까지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도저히 그러한 상황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꾸며낸 듯한 멋들어진 대사들)

 

단정적으로 <시크릿>은 너무 장황하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스토리가 점점 정리되고 추려지는 게 아니라 계속 구름 속을 걷게 한다. 그러다 모든 걸 한 방에 해결하려는 욕심은 특정한 개인을 거의 신적 존재에 가깝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오류는 비단 <시크릿> 뿐만이 아니라 많은 스릴러라든가 공포 장르에서 되풀이되는 가장 대표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완벽하게 모든 걸 (특히 CCTV 테이프 조작까지)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었을까? 혹시 감독은 <유주얼 서스펙트>를 너무 많이 본 건 아닐까? (그토록 멋진 내부를 가진 오피스텔의 CCTV가 낡은 비디오 방식이라는 건 예외로 하자)

 

정서적 전달도 미흡하다. <시크릿>은 외형적으론 ‘누가’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지만, 내용적으로는 ‘왜’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깐 반전도 중요하지만, 왜 아내가 깡패인 피해자와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이유가 중요한 것이다. 팁이 주어져 있긴 하다. 성열은 지연에게 “당신이 죽였어?”라고 묻지만, 아내는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일 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더 중요해”라고 말한다. 관객의 복창을 터지게 하는 말이다. 이 부부는 대체 일 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결국 문제는 기본이다. 수사의 기본이 피해자와 마지막까지 있었던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처럼 말이다.

 

 

※ 사실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지점은 아이를 잃은 후 일 년이 넘도록 아이 죽음의 원인인 여인과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성열은 딸이 죽은 후 정부와의 관계를 끊지 못했을까? 사실 성열의 정부는 이 영화에 하등 필요 없는 인물이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즉, 성열이 정부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설정은 단지,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필요했을 뿐이다.(또는 흐트러져 있었던 지연의 옷을 위해)

 

※ 류승룡이 노란 재킷에 르왁 커피를 씹으며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은 그럴듯하긴 하지만, 너무 전형적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류승룡의 캐릭터는 긴장감의 고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분명 아주 나쁜 놈인 건 사실인데, 별로 겁나는 캐릭터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죽 우습게 봤으면 경호가 엘리베이터에서 지연이 아니라 포스터의 여자를 지적했겠는가. 영화 속 재칼의 캐릭터라면 경호는 끌려가 죽든가 죽도록 맞아야 할 운명이었겠지만, 웬걸? 재칼은 순순히 경호를 놔준다. 이때부터 뭔가 이상했다.